버전 기록을 다시 열어 보니, 내가 정한 줄 바로 옆에 내가 지운 줄이 있었다. 하루 만에 바꾼 것도 있다. 『강릉, 오늘』 기획서에는 거의 모든 줄에 그 결정을 누가 내렸는지가 붙어 있는데, 내가 정한 줄만 따라가 보면 뒤집은 기록이 꽤 많다. 숨기는 것보다 이유랑 같이 남겨 두는 게 다음 결정에 낫다고 봤다.
기획자라면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기획할 때 늘 "이게 최선이야? 이게 가장 최선일까?" 하면서 생각을 뭉게뭉게 키운다. 안을 하나만 내지 않고 여러 개를 뽑아 놓고, 그중에서 서비스에 가장 맞고 사용자가 가장 편한 걸 찾는다. AI랑 같이 작업하다 보니 그 과정이 기획서를 확정하는 단계에서 왔다 갔다 한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았을 뿐이다. (그래서 기록이 좀 많다.)
카드 테마, 한 종에서 다섯 종으로
『강릉, 오늘』은 그날 기분, 체력, 동행, 날씨를 고르면 카드 한 장과 함께 추천 장소, 오늘의 코스를 주는 앱이다. 처음엔 카드 그림체가 한 종이었다. 타로니까 단순하게 한 벌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림체를 두고 개발자들이랑 디자인 논쟁이 꽤 오갔다. 기획 포인트는 오히려 그 논쟁에서 나왔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한 종으로 가자니 너무 심심했다. 앱 자체가 단순해 보였다.
그러다 든 생각이 있다. 여행 코스를 하나씩 찍어 나가는 것 자체가 이미 수집욕을 건드리는데, 거기에 수집욕을 하나 더 얹으면 어떨까. 그렇게 지금의 다섯 테마가 나왔다. 카드는 '바다멍', '카페 빙고', '새벽 5시', '혼자가 좋아' 같은 이름으로 12종이 있고, 카드마다 그림체가 다섯 가지씩 있다(앱에서는 이걸 '테마'라고 부른다). 지금 테마는 클레이, 페이퍼컷, 흑백동화, 크레파스, 금빛 아치다. 뽑을 때 그중 하나를 갖고, 나머지는 하나씩 모아 가야 한다.
고르는 과정도 일부러 같이 했다. 요즘은 개발자도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디자인을 기획자 혼자 정하지 않았다. 디자인은 결국 취향이기도 해서,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취향에 맡기고 싶었다. 그래서 화풍을 A안부터 J안까지 열 가지 만들어 놓고, 팀 투표로 다섯 가지를 골랐다. 뽑히지 못한 다섯 안은 지금도 보관 폴더에 남아 있다. 6월 23일, 기획서에 다섯 테마를 일단 확정해 올렸다.
공유 기능, 이틀 사이에
9월 2일, 카드를 이미지로 보내던 공유를 링크 카드로 바꿨다. 그림 파일 대신, 카카오톡에서 미리보기가 뜨는 링크를 보내는 방식이다. 받은 사람에게는 카드 뒷면이 먼저 보이고, 눌러서 뒤집어야 앞면이 나온다. 처음 안은 받은 사람이 카드를 뒤집고, 자기 카드도 뽑고, 같이 가면 양쪽에 보상이 가는 네 단계. 그날 기록에 남은 내 반응은 이거였다. "오 괜찮은데? 좋아!"
근데 다음 날 다시 보니 이상했다. 공유하는 사람이 진짜 하고 싶은 건 친구랑 코스를 짜는 게 아니라, 이미 모은 카드에서 아직 없는 테마를 여는 것이었다.
만드는 쪽에서 봐도 네 단계는 애매했다. 단계가 늘면 구현이 복잡해지고, 확인해야 할 경우도 그만큼 늘어난다. 앱 공유는 대부분 카카오톡으로 오갈 텐데, 그러면 링크가 카카오톡 안의 브라우저(인앱 브라우저)에서 열린다. 거기서 앱의 해당 화면으로 바로 넘기는 딥링크를 처리해야 하고, 그 사이에 로그인이 풀리는 경우 같은 걸 하나하나 대응해야 하는 게 눈에 훤했다.
그래서 그날 통째로 바꿨다. 흐름은 하나만 남겼다. 뒤집는 재미는 살리되, 친구한테 공유할 때 사용자가 가장 원할 만한 혜택 하나를 기능으로 확실히 넣고 싶었다. 친구가 카드를 뒤집으면 보낸 사람에게 아직 없던 테마가 열린다. 받은 사람은 웹 화면에서 카드를 뒤집기만 하면 된다. 뒤집고 나면 아래에 '나도 강릉 여행 타로 보기' 버튼이 있다. 친구 카드를 구경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내 카드도 뽑아 볼 수 있게, 거기서 바로 이어지는 흐름으로 설계했다.

같은 날 하나 더 고쳤다. 카카오톡에는 링크 주소가 글자 그대로 보이는데, 주소에 카드 이름이 들어 있어서 뒤집기도 전에 무슨 카드인지 다 알려 주고 있었다. (뒤집는 재미가 주소 한 줄 때문에 사라지고 있었던 거다.) 주소에서 카드 이름을 빼고, 카드마다 짧은 암호 같은 코드를 붙였다.
웹 카드 미리보기, 하루에 세 번
소개 웹은 『강릉, 오늘』을 조금 더 쉽게 소개하려고 만든 페이지다. 사용자에게는 앱을 까는 것부터가 첫 번째 허들이라, 깔기 전에 먼저 둘러볼 수 있게 했다. 거기에 어떤 카드가 있는지 보여 주는 칸이 있는데, 8월 22일 하루 동안 이걸 세 번 바꿨다.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기도 했고, 보는 사람이 바로 알아볼 수 있게 직관적이었으면 했다.
- 열두 장을 다 보여 주던 걸, 앞면 몇 장만 열고 나머지는 뒷면으로 깔았다. 다 공개하면 앱에서 모을 이유가 없으니까. 뒷면이 깔린 화면 자체가 "아직 안 뽑았다"를 말해 주니, 문구로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 1번처럼 바꿨지만, 열두 장을 한 화면에 쭉 늘어놓는 모양 자체가 여전히 마음에 안 들었다. AI랑 작업하면서 이 얘기만 세 번은 한 듯? 결국 한 번에 한 장씩 뽑히는 연출로 바꿨다. 타로는 뒷면이 놓이고 뽑아야 앞면이 나오는 물건이니, 연출 자체가 제품 설명이 된다.
- 그랬더니 카드가 저절로 넘어가기만 해서 뽑는 느낌이 없었다. 덱을 부채처럼 펼치고 방문자가 직접 한 장을 고르게 했다. 스크롤만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위해,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한 장 뽑히는 동작은 남겼다.
세 번 바꾸고 얻은 결론은 이거다. 카드가 저절로 넘어가는 걸 구경할 때보다, 내 손으로 한 장을 골랐을 때 뽑는 기분이 난다.

정하고 뒤집은 자리마다
세 번 다 뒤집은 이유는 결국 같았다. 처음 안은 서비스의 핵심이 될 기능만 생각하고 시작했다. 카드 그림 한 벌, 친구랑 같이 가면 보상을 주는 공유, 열두 장을 다 보여 주는 미리보기처럼.
뒤집은 안은 그 기능을 실제로 쓰는 사람이 어떤 순서로 움직이는지에 집중했다. 모으는 사람에게는 더 모을 거리가 있어야 하고, 공유하는 사람에게는 보내고 나서 얻는 게 있어야 하고, 소개 웹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카드를 직접 뽑아 보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앱이 어떤 건지 감이 온다. 그래서 테마는 다섯 종으로 늘렸고, 공유는 친구가 뒤집으면 테마가 열리는 흐름 하나로 줄였고, 소개 웹에서는 방문자가 직접 한 장을 고르게 했다.
다음 화에는 반대로 덜어내고 다시 고친 기록을 모았다. 그중엔 이미 고친 걸 또 기획하고 있었던 일도 있다.